[제7장] 지리산의 첫 총성과 대간의 혈로 — 조경남의 《난중잡록》과 호남 의병
🇰🇷 한국어 정규 에디션 (교보문고 바로출판 POD 출판 원문) 제7장: 지리산 대간과 혈로 — 조경남의 《난중잡록》과 불우치·지리산 의병 지리산 주천면 불우치 및 조경남 사당 구글 실측 지도 ▲ [현장 실측 지도] 구글 맵(Google Maps)으로 확인하는 남원 주천면 불우치(부처모퉁이) 전적지 및 조경남 사당(효렬사) 현대 좌표 위치 :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 불우치(佛遇峙) 전적지 및 산서 조경남 종택·효렬사 (N 35°22'15" · E 127°24'40") 시대 배경 : 1597년 음력 8월 16일 남원성 함락 직후 ➔ 8월 22일 불우치 전투 ➔ 8월 23일 궁장치 전투 ➔ 산동원 대첩 및 《난중잡록》 57년 기록 주요 인물 : 산서 조경남(趙慶男, 1570~1641), 서애 류성룡(柳成龍, 1542~1607), 전 초계군수 정이길(鄭以吉), 전라병사 이광악(李光岳), 명나라 제독 유정(劉綎) 1. 스팟 맵 오프닝 붓과 칼로 지리산을 지켜낸 의병장의 피어린 전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?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, 지리산 서북 능선이 남원 분지로 흘러내리는 험준한 산모퉁이 길목인 불우치(佛遇峙, 일명 부처모퉁이) 전적지 앞에 서 있습니다. 1597년 음력 8월 16일, 남원성이 왜군 대군에 함락되고 성안의 수많은 군관민이 장렬히 산화했을 때, 남원 땅은 깊은 슬픔과 혼란에 휩싸였습니다. 행정망이 무너진 틈을 타 왜군은 지리산 자락으로 흩어져 숨어 있는 백성들을 수색하기 위해 골짜기마다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. 이 절체절명의 암흑 속에서 붓을 잡던 스물여덟 살의 남원 청년 선비 조경남(趙慶男, 1570~1641)은 분연히 칼을 차올렸습니다. 그는 늙은 부모와 마을 피난민들을 지리산 험준한 계곡으로 피신시킨 뒤, 흩어진 장정들과 포수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습니다. 남원성이 무너진 지 불과 엿새 뒤인 8월 22일, 조경남은 불우치...